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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놀이터에서 동네 오누이를 만났다. 여섯 살 누나는 영리하고 야무져보였다. 코를 줄줄 흘리는 동생을 데리고 나와 보살피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무척이나 상냥하게 대했다. 그런데 동생 애가 입고 있는 옷차림이 한 눈에 봐도 좀 이상했다. 다섯살이라는데 작고 헐은 유아복을 입고 턱받이도 하고 있었다. 
 

나는 차에 넣어두었던 간식을 꺼내 두 아이에게 권했다. 동생이 “누나 진짜 맛있지?”하며 두 손 가득 빵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빠는 술만 드시고 잠만 자요. 엄마는 언제 나갔는지 모르겠고 언제 올지도 몰라요” 했으며 점심은 스스로 챙겨서 먹고 나왔다 한다. 자기 집은 어디인데 아줌마는 어디에 사냐며 물어보기도 했다. 알밤처럼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다. 아이들이 간식을 들고 곱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에서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자꾸만 뒤가 돌아보였다. 문득 가을바람에 몸 어딘가 시려왔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간식을 챙기다 보면 종종 먹고 싶다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나도 그거 좋아하는데요” 하며 스스러운 마음 없이 다가선다. “아줌마는 누구세요? 믿어도 되는 분인가요?”하며 따져 묻지도 않고 선뜻 손을 내미는 청명한 마음에 감동을 받다가도 곧 줄 게 별로 없는 내 손을 움츠리게 된다.
 

한 번은 크게 자괴감을 느낀 적도 있다. 작년에 놀이터에서 만난 적 있는 아홉 살 아이는 할머니랑 둘이 살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가 치매를 앓게 되면서 아이는 한동안 방임되어 있었다. 아이가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어느 비오는 날 저녁에 나에게 도와달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가보니 정말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온기 없는 험한 자리에서 두 사람은 억지로 살아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위었고, 치매가 뭔지 모르는 아이는 할머니에게 ‘술 취한 거 아니냐’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배고프다 했고 다 헐고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냉장고와 음식은 모조리 썩어 있었고 집은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했지만 벽에는 환한 웨딩사진과 돌 사진이 아이의 귀함을 주장하듯 걸려있었다.
 

행정기관과 민간의 도움을 여기 저기 청해봤지만 치매가 있는 할머니와 아이의 어려움을 충분히 돌보기에는 부족했다. 나는 아이를 도울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사회의 차가운 태도와 마주했다. 행정기관이나 단체는 현금 또는 현물 지원을 하는 데 머물고 복잡한 상황 앞에서 여전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었다. 그리고 형편이 더 좋지 않은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어려운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게 현실이지만 선을 긋는 태도가 좀 야속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는 회피하는 태도였다. 이미 능력과 의지를 잃은 부모에게 양육 책임을 강조했다. 알코올 중독이거나 장기 실업상태거나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되는 부모에게 자꾸만 아이를 돌보라고 강조하면 결과적으로 아이를 학대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데도 말이다.
 

최악의 경우는 아이를 혐오하는 태도였다. 나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듯 ‘그 애가 관심을 받으려고 자꾸 거짓말을 해요.’, ‘그 애는 벌써 글렀어요’ 하며 문제아 취급을 한다. 아이가 거짓말이라도 해서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았다. 궁핍하면 어른도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사기도 치지 않느냐, 아이가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멈칫거리며 경계를 설정하기 바빴기에 이웃들의 냉랭한 태도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어릴 적에도 가난은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지 않았던 것은 대개가 가난했고 서로 도우는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있어도 없는 척해야지 있다고 해서 표시내면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20년의 냉혹한 세월을 거치면서 삶의 격차가 무척 심해졌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태도도 퍼진 것 같다. ‘좋은 부모 만나서 잘 먹고 잘 사는 건 다 내 복이다’라는 식이랄까. 없어도 있는 행세를 하는 게 미덕이 되었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없는 사람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헤아려 보는 마음이 메마른 거 같다.
 

사회복지가 확대되고 있다지만 그것이 사라져 가는 가족, 마을, 공동체의 빈자리를 대신하지 못하는 거 같다. 경제위기를 통해 경험했지만 가족 역시 개인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다. 마을 공동체도 무너져 위기 가족 안에서 챙김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대로 방임되고 있다.
 

사회복지 서비스가 정말 필요한 아이들에게 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슨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신청하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런 저런 제도를 알아서 신청해 쓰라고 하면 너무 불친절하지 않은가. 구폰을 줘도 누군가 챙겨야 쓸 수가 있고 돈을 줘도 누군가 챙겨야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챙기지 못하고 차려만 놓은 복지는 아이들 입에 들어가지 못한다. 온전한 삶이 되도록 챙겨주는 복지가 필요하다. 내가 시장이라면 챙김 서비스를 개발해 일자리를 만들 거 같다. 챙김서비스 제도를 만들어 동네 아줌마 대신 배고픈 아이들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우람한 나무로 자라날 것을 믿는다. 그러나 좀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듬뿍 물이라도 주고 닥여 줄 수 있다면 가을바람에 마음이 시리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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