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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늙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년 전 여름이었다. 시장의 속옷가게에 들렀다가 목격한 장면이다. 칠십 중반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 인견 원피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 같이 속에 올인원(브래지어, 웨이스트 니퍼, 거들이 함께 붙어 있는 여성용 속옷)을 입고 있었다, 한여름에! 보는 것만으로도 거북하고 더워서 어쩔 줄 모를 그 쪼이고 불편한 속옷을 말이다.

 

또 다른 장면이다. 겨울에 허리가 탈이 나서 병원엘 갔다. 겨울엔 정형외과에 물리치료 받으러 오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그날도 할머니들이 많으셨는데 가만히 보니 대부분 화장을 하고 있었다. 팔십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뽀글 파마’의 까만 머리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뽀얀(?)얼굴을 하고 대기실에 앉아계셨다. 한 할머니는 걸을 때마다 몸을 앞뒤로 떨며 제대로 걷지를 못했는데 역시 얼굴은 곱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아흔이 넘었는데도 머리 염색을 하고 피부과에서 얼굴에 난 검버섯을 빼고 밖에 나가실 땐 반드시 화장을 하신다.

 

이런 풍경을 보았던 몇 년 전의 나는 그 풍경이 몹시 낯설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나이든 사람들까지 저렇게 외모에 매달리게 하는구나. TV나 메스컴, 광고의 주된 공략 층이 십대나 이십대니 그들이 하는 짓을 나이든 사람들도 따라 하나보다. 그러나 참 얼마나 볼썽사나운 일인가. 나이 든 자가 보여주는 위엄이나 지혜와는 거리가 먼 모습들이구나.’

 

몇 년이 지나 육십이 넘은 나는,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사십대 후반부터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감당하기 어려워 염색을 시작했다. ‘언제까지 염색을 할 건데? 육십 지나면 그만둬야지.’ 그런데 여전히 그만 두지 못한다. 사십대의 나는 육십 대의 나를 늙었다고 생각했는데, 육십이 된 지금의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 분들도 자신의 늙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아닐까.

 

실제로 노년은 외모로 나타나고, 타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보바르의 <노년>에 나오는 숱한 노인들은 자신의 노년을 외부로부터 느끼지 자신의 내적 상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노년은 자신에게조차 낯선 타자로 경험된다. 거울 속에 늙어가는 저 자가 바로 나란 말인가? 거울은 거짓말을 자주 한다. 어떤 날은 “아직 넌 젊어!”하고 달콤하게 속삭이고 어떤 날은 “아주 맛이 갔네!”라고 투덜댄다. 그 어느 얼굴도 내 얼굴은 아니다.

 

노인들이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는 시점은 독립성을 잃었을 때라고 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의존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늙었다고 느끼고,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그런데 자신의 늙음을 왜 이토록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뿌리 깊고 거대하게 우리를 지배한다. 인종차별이나 연령(노인)차별, 성차별 등 모든 차별의 근원은 바로 외적인 모습이다. 그 차별의 역사 또한 오래 되었다. 인류의 어느 역사에서도 노년은 노년 그 자체로서 존중받은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노년의 역사>는 말해준다. 노인이 누린 존경과 권위는 ‘개개인의 능력과 지속적인 성취를 통해서만 획득되고 유지’되었다. 일부 특권을 가진 노인은 그 특권에 의해 존중받았을 뿐이다.

 

그러니 차별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무기가 외모이기도 한 것이다. 역사 이래 인간은 젊어지고 싶어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세계의 숱한 신화와 민담 등의 공통 소재 중 하나는 ‘젊음의 샘’ 류의 이야기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젊은 외모를 갖기 쉬운 시대다. 안티 에이징을 내세운 미용, 성형이 대세다. 돈 가진 자들은 세련되고 티 안 나게 젊어질 수 있는 기술에 접근이 용이하고, 돈 없는 자들은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뽀글 파마를 하고, 화장을 하고 몸매의 결함을 교정해가며 자신의 늙음을 부정한다. 그걸 몰지각한 노인네들의 짓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늙음에 대한 이상(理想)과 조롱, 혐오감은 한 개인에게 모순 없이 존재한다. 노인에 대한 그럴듯한 이상을 가짐으로써 그들을 우리와는 별개인 타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동시에 그 이상을 잣대로 많은 노인을 조롱하거나 혐오할 수 있어진다. 나는 더 이상 젊어지려는 노인들을 조롱할 수 없어졌다. 언제까지 머리 염색을 할 것이며, 늙어가는 내 외모에 담담해질 수 있을 것인가?

 

노년은 삶의 그 어느 때보다 자신과 세상과 치열하게 싸워야 할 시기이다. 아, 정말 어려운 시간대에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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