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섭
2016.01.23 20:52

[도명칼럼] 내 인생의 전환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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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로 와서 맞이한 첫 겨울. 


모동면 포도농장에 기거하면서 그해 겨울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 전국 방방곡곡에 이미 귀농해 살아가고 있는 분들을 찾아, 기타하나 둘러메고~. 
무작정 찾아간 불청객을 반갑게 맞아주고 자신들의 경험담을 나눠 주셨던 많은 분들...  
사실 성가시고 귀찮았을 터인데도 내색하지 않고 귀한 시간을 내어주셨던 분들께 지금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게 방랑아닌 방랑을 마치고 상주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 여보세요 ". 
" 안녕하세요. 저 K 인데요.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 아 안녕하세요.  무슨~?"
" 저도 상주에 가서 살고 싶어서요. 
혹시 주변에 빈 집 좀 구할 수 있을까 해서요~~"
지난 여행 중에 우연히 알게된 이였다. 어디로 귀농할 지 몰라 찾아 다니고 있다 했었는데~~
" 저도 온 지 얼마 안되어서 잘 모르지만 함 알아보고 연락 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이리 저리 수소문하다가 주변의 먼저 오신 분의 도움으로 한 곳을 소개받았다.  
 화동면에 자리한 그곳을 찾아가던 날.지난 밤 내린 눈으로 멀리 보이는 산등이 온통 하얗다. 그 아름다움이란~~~
 굽이굽이 아직 눈이 쌓여있는 산길을 조심스레 돌고 돌아가다가 언덕 하나를 넘어가는 순간 그 너머로 펼쳐진 광경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 와. 이런 곳에 사람이 살아~?"
영화 '동막골'에서 처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듯한, 색다른 모습의 세상이 거기 있었다. 
길도 없는 것같이 보이는 눈길을 헤쳐가며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아주 기이한 경험을 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었다.  곳곳이 말라버린 칡넝쿨에 뒤덮인 채 허물어져가는 흙집들 몇 채와 여기저기 흐트러진 가재도구들  등등... 이미 폐허로 변한 모습의 마을이었다.  
알고보니 마을에 살던 마지막 사람이 떠난 지 6년 되었다고 한다. 
그뒤로 텅 비어번린 이 마을. 
그동안 많은 사람이 와서 보고 참 좋다고들 했지만  누구 하나 감히 들어와서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데~~~
 그러나 내 머리속에서는 그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어떤 식으로 손을 대어 고치면 어떻게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변화하게 될지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소개해달라 부탁했던 이도 마음에 들었던지 그중 제일 안쪽에 있는 집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아래 큰 마을에 수소문해서 그 집을 관리하는 어르신을 찾아가, 수리해서 사는 조건으로 무상 임대를 했다.  
새 봄이 오면 다시 와서 수리하기로 하고 그이는 돌아갔고 나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밸이 울렸다. 
"여보세요. 저 K인데요. 직장에 일이 생겨서 한 동안 손을 놓을 수 없게 되어서 못 가게 되었어요. 죄송해서 아쩌지요~?"
" 저런. 어쩌지요?  집도 다 빌려 놓았는데~~"
"그러게요.  애써 도와주셨는데~~"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목소리에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 알았어요. 뭐 또 다른 인연이 생기겠죠. 잘 지내세요~"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가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그곳을 보여주며 내 머리속 그림을 설명해주었다.  여기저기 마을을 둘러 보더니 아내도 좋아라 했다. 
그렇게 우리가 살기로 결정하고 드디어4월 부터 본격적인 농장일이 시작되었다.  하우스 포도가 1000평. 노지 포도 2500평 규모의 농사일을 하며,  농장의 일과시간 전후로 집수리를 하였다. 
생전처음 해보는 일인데다가 새벽과 저녁, 짬짬이 시간을 내어 하는 일이라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치 살아 숨쉬는 것처럼, 우리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되살아나는 마을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더 신나고 흥이 났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이었다.  마침 휴일이라 하루종일 수리할 생각으로 도시락까지 챙겨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귀농학교 동기중 한 사람이 가족과 함께 찾아왔다. 
역시 귀농에 관심이 많았던 가족이라 집 수리과정을 보고싶어 왔다고 했다.
" 와!  도룡뇽 알이다~!"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 남매가 탄성을 지르며 시냇물가로 내려갔다. 
" 참 편안한 느낌이네요. 어떻게 이런 곳을 찾으셨어요~?"
여름으로 접어든 때라 갖가지 풀과 꽃으로 뒤덮힌 마을은 겨울의 황폐함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아. 인연이 따로 있었네요. 신기해라"
우리가 이곳에 오게된 사연을 들은 동기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농장으로 가자는 권유를뿌리치고 부득불 그곳에서 하룻 밤 자겠다는 그네들. 
 아직 문도 달리지 않은 방에 재미삼아 짜놓았던 멍석을 깔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폈다. 초여름이라 해도 산속이라 밤이되면 꽤나 추울 터였다. 
다음날까지 휴무여서 아침에 보기로 하고 돌아갔는데...
 다음날 아침 먹을거리를 싸서 다시 갔더니 ,
"어제밤 성우가 신기한 꿈을 꿨대요^^"
하며 아이를 불렀다. 
" 성우야. 어제 꿈 얘기 다시 한 번 해봐~~"
성우는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 
" 하얀 머리에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꿈속에서 저를 보고 웃었어요~~
와!  정말 신기해요. 여기 산신령인가 봐요~~"
성우 덕분에 우리는 산신령께 신고식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집을 고쳐나가는 한편으로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동안은 포도 재배법을 조금씩 익혀갔다.  
남 밑에서 일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우리는 일년간의 농장에서의 귀한 경험을 껴안고  그 해 가을, 수확을 마친 농장을 떠나 그동안 수리해놓은 집으로 이사했다. 
' 안은소 마을'
임진왜란 때 피난왔던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이 곳은 이름부터 '숨을 은'자를 써서 '은소'라 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 좀더 바깥에 위치했다 하여 이름붙여진 큰 마을은 바깥 은소. 
그곳엔 아직 8가구 정도가 남아서 어르신들이 살고 계셨다. 
어르신들은 어느날 갑자기 이사들어온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한참동안을 이런저런 형태로 보살펴 주셨다.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한편, 안은소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임진왜란때 피난온 사람들이 심었다는 이 나무는 수령이 500년 정도 되어 상주 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왠일인지 시름시름 앓다가 우리가 이사오기 얼마전에 고사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멋들어진 자태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해 10월 20일, 입주기념 당산제를 열었다. 
전 해 겨울동안 배운 솜씨로 왼새끼줄을 꼬아 느티나무에 감고 제사상도 차렸다.  
또 그동안 알고 지냈던 지인들을 모두 초대하고 바깥마을 어르신들도 모셨다.
아들이 다니고 있던 간디 '중학교 풍물반 아이들'의  길놀이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마을을 한바퀴 돌며 지신밟기를 해 주었다. 
맨 위에 우리가 살 집 부터 아직 고쳐지진 않았지만 모양을 갖추고 있는 집마다 들어가서 한 판 굿을 펼치며 이 마을이 되살아나기를 기원했다. 
길놀이를 마치고 느티나무 아래 다시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작은 노래 공연도 펼쳤다. 
 왁자지껄한 웃음과 신명속에 우리의 또다른 인생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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