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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헌

 

‘진보’교육감이 취임한 교육청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청의 변화가 학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목격했습니다.

 

교육감이 참석한 가운데 부서별 다음해 업무계획에 대한 보고회가 열렸습니다. 두툼한 계획서가 책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학교에 근무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익숙한 “3무 운동” “1학교 1○○ 갖기”“1교사 1○○실천하기” 처럼 1, 3, 5의 숫자와 연결된 “00하기” “00하지 않기” “00갖기” 등이 나열된 보고서를 보고 교육감이 말했습니다.

 

“장학사님! 장학사님이 그 계획서에 한 줄 써넣으면 학교에서는 선생님 한 분이 담당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의 장부가 생기고, 매달 또는 분기별로 보고서를 올려야 합니다. 선생님들이 우리 학생들 언제 가르칩니까?

 

늘 해오던 관행대로 계획서를 작성했던 장학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청은 해마다 두툼한 업무계획을 세우고, 연초에 학교로 내려보내면 각 학교에서는 또 부서별 교육계획을 세워서 교육청에 보고합니다.

 

그리고 월별, 분기별, 수시로 보고를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통, 많을 때에는 수십 통의 공문이 학교와 교육청 사이에 오고 갑니다. 교사들은 수업보다 중요한 것이 공문 보내기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수십 년간 학교와 교육청 사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 관행을 끊어보려고 교육감이 업무 삭제를 지시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동네 화서초등학교 담벼락에 “100대 교육과정 선정”이라는 펼침막이 걸려있습니다. 교육부가 매년 학교의 교육계획 공모전을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육청별로 각 학교에 참여를 독려합니다. 이것을 교육청이 모아서 선발한 후 교육부로 보냅니다. 그걸 교육부에서 다시 골라서 발표를 하는 것이지요.

 

정말 ‘아름다운’ 교육과정이 학교마다 만들어져서 교육청에 제출됩니다. 학교장은 ‘학교의 명예’가 있으므로 교무부장에게 압박을 하지요. ‘아름다운’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서 사진자료도 만들고, 소설도 써야 합니다. 이걸 만들어내기 위해서 교무부장과 몇몇 선생님들은 컴퓨터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육부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연례행사일 뿐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것으로 ‘연구학교’. ‘선도학교’, ‘공모제’가 있습니다.

 

부지런한데 무능한 관료가 최악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교육부입니다. 매년 뭔가 새로운 계획이 야심차게 만들어집니다. 그래야 뭔가 일을 하는 것 같지요. 새로운 계획이 만들어지면 학교에 적용을 하기 위해서 연구학교라는 것을 지정합니다. 그 학교에서 먼저 시행해보는 것이지요.

 

연구학교로 지정되면 1년이나 2년 동안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보고회’를 갖지요. 교육부 담당자와 교육청 높은 관료, 그리고 주변학교의 교장과 담당교사가 참여합니다.

 

“이 계획에 따라 적용해본 결과 이러저러한 변화가 있었고 그리하여 높은 성과를 거양하였다”는 보고서가 두툼하게 만들어져서 배포됩니다.

 

매년 교육청마다 수십 개가 넘는 교육부 지정 연구학교가 운영됩니다. 제가 학교에 발령을 받았던 시절부터 합산해보아도 경상북도에만 최소 3000개의 연구가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학교마다 “높은 성과를 거양”했을 것입니다. 그 성과가 모였으면 지금쯤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마어마한 성과로 넘쳤겠지요.

 

그러나 ‘연구결과’는 발표와 동시에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연구학교 발표자도, 그 연구결과를 듣는 관료도,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연구학교로 지정되고 나면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몇몇 선생님들은 거기에 매달리게 됩니다. 발표를 앞두고는 전시할 자료 만들기와 소설같은 보고서 작성에 매달립니다. 이것을 좋아할 교사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교장, 교감 승진에 필요한 승진점수를 당근으로 내어놓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연구, 선도, 공모’ 이런 말이 붙는 순간. “아 선생님들은 고생하고 아이들은 방치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습니다.

 

이런 교육계의 악습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교육감이 “하지 맙시다‘라고 하면 됩니다. 교육국장이 연구학교 선정계획을 가지고 오면 교육감이 ”그거 학생교육에 도움이 안되는 것 국장님도 아시지요? 우리 교육청은 하지 맙시다“라고 하면 됩니다. 교육감의 그 한마디 지시가 수백, 수천의 선생님들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학생 곁으로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진보교육감’이라는 새로운 기류가 8년 전, 그리고 4년 전에 우리나라에 등장했습니다. 지난 70년의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흐름입니다.

 

그들이 나타난 후에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교의 문화를 바꾸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교육감의 관계설정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이 배우는 곳입니다. 성장해가는 곳입니다.

여기서 교사는 학생의 배움을 돕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이 중심입니다.

모든 체제나 제도는 학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학교는 학생이 배우고 교사가 가르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교수학습 활동이 중심이 되는 학교이어야 합니다.

학교의 교장과 교감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학생과 교사가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돕는 사람입니다.

그럼 교육청의 장학사와 관료, 그리고 교육감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학교에서 교수학습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관점이 달라지면 정책이 달라집니다. 학교를 학생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달리 보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를 가보면 ‘운동장이 이렇게 좁았던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릴 때 작은 몸집으로 바라보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어른이 되고 나면 좁아 보입니다.

 

교실에서 무릎을 굽히고 학생들의 눈높이로 칠판을 보면 달리 보입니다. 학교의 모든 시설과 제도를 학생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말이지요.

 

학교에서 우리 학생들 개개인에게 허용하고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방바닥, 소파, 침대...를 이용하던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주어진 공간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허용된 공간은 엉덩이를 놓을 수 있는 개인 의자가 전부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하루 종일 적게는 7-8시간에서 많게는 15-6시간을 그 의자에서 보냅니다. 그렇게 중요한 공간임에도 그 의자를 주목하는 어른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의자는 학교에서 가장 값싼 가구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학교의 모습은 달라지지만 우리 아이들이 앉아 하루를 보내는 그 의자는 수십 년 동안 변함이 없습니다.

 

어느 교육청에서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의자와 책상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약간만 더 투자하면 학생들의 신체 성장에 맞는, 그리고 편안한 의자와 책상을 학생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 벽에 부딪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에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학생 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이 없던 것이지요. 그래서 교육청이 원하는 규격과 사양의 의자를 공개하고 그것을 제작해서 납품하도록 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 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이지요.

 

선생님들은 행정적인 업무 때문에 학생상담이나 수업준비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수업을 못해도 질책을 받지는 않지만 공문이 늦으면 질책을 받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잡무를 없애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의 잡무를 줄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지만 눈에 띠는 성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잡무경감업무’만 하나 더 늘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학교에서 전통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업무가 있습니다. 학교와 교실의 환경업무를 누가 담당하느냐의 갈등입니다. 공기질, 수질 등을 점검하는 업무입니다. 학교 보건선생님들과 행정실의 갈등이 십여 년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건선생님은 보건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의 업무가 아니다는 주장과 행정직원들은 학교보건법에 명시된 업무이므로 보건교사가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요? 간단합니다. 그냥 그 업무를 교육청에서 가져가면 됩니다. 교육청에서 그 업무를 담당하면 학교에서 갈등이 일어날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세종시교육청은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교육청에서는 '교육지원센터'라는 것을 개설했습니다. 작은 읍지역에 실험적으로 설치해서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학교의 업무지원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담당하던 업무(잡무)를 가져가는 곳입니다. 그러면 교사들은 수업과 학생상담에 집중할 수 있겠지요. 매우 새로운 실험입니다. 이 곳의 실험이 성공하면 지역 전체로 넓혀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경북은 수십 년간 변화 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곳에는 들불처럼 번져가는 ‘혁신학교’도 이곳에서는 찾기 힘든 ‘교육계의 갈라파고스’가 되어버렸습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학생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전히 “1학교 1○○ 실천하기‘ 식의 교육정책으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걸맞는 학생교육은 불가능합니다.

 

"교육계는 원래 보수적인 곳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리처럼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교육계가 보수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교육계가 보수적이었을 뿐입니다. 교육계야 말로 그 어느 곳보다 진보적이여야 합니다. '내일'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이야 말고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하는 곳입니다. 수많은 직업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여전히 구시대의 직업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 '블럭체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 여전히 철야 야간자습에 A4 용지 빽빽이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교육계는 원래 보수적이다"라는 말은 지금의 교육에서 변화되기 싫어한다는 말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하려면 공부해야 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학교를 하나의 학습공동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경기도 의정부의 한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공부모임에서 책을 몇 권씩 발간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교육에 대한 연구가 대학이 아닌 초중고 학교현장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육청이 이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같은 예산으로도 수학여행 비용을 학교에서 부담하고,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혁신적으로 운영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공자왈 맹자왈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학력관을 제시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경북에도 새로운 바람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교육부가 가지고 있던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에 대한 결정권을 시도교육감에게 넘겨주는 것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시도교육감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부터 관심을 가집시다. 주변이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해봅시다. 어떤 선택을 할지 여러분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앉는 의자가 달라지고, 아이들이 매일 먹는 급식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관심이 그런 학교를 만들어냅니다.

 

고민합시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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