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말 시인과 만나는 상주시인들
2018.09.07 09:49

선운사 - 황정철(상주들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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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황정철(상주들문학회)

 

 

어느 생에  왔었던가 

그 길을 찾아서 도솔암에 오른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시계처럼

 

단풍나무 참나무 칡넝쿨

나무와 바람과 바위 사이에

꽃무릇 지천인데

꽃무릇은, 핌과 짐 사이 

또는 짐과 핌의 어디쯤에서

아직 채 피어나지 않았다

 

도솔암 아래에 서면

어느쪽으로 향해도 돌아가는 길

되돌아가고자 해도 발자국이 없다

오지 않은 듯 왔다가 떠났던 그곳*선운사, 꽃무릇은 지천인데

내일을 전제하지 않은 오늘

네가 더 이상 그립지 않게 되면서

내 사랑은 끝났다

 

 

* 도솔암에 오르는 길엔, "오지 않은 듯 왔다 가소서" 라는 경구가 씌어 있다

 

       ㅡ 『들문학』 (2017 제24집)

 

 

 

 

시계 반대 방향...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떠올린다. 아기에서 어른 그리고 노인이 아니라 노인에서 어른 그리고 아기로 돌아가는 사람.

우리가 만나는 지금은, 지난 어제보다 다가올 내일보다 늘 가장 환하다.

피기 전이거나 활짝 피거나 또한 이미 져버린 그 어느 시간보다 지금이 나와 닿아있는 가장 당연한 만남의 시간이다.

어제도 내일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그리움은 없는 게 되는가.

더 이상 그리운 게 없다면 사랑은 끝인 것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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