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2019.06.11 09:24

농부 김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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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오노 원작의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는 사람>에는 황무지에 묵묵히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드는 ‘엘지아 부피에’가 등장한다. 도토리를 물에 불려놓았다가 손가락으로 흙에 구멍을 내어 차분히 심어나가는 장면은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가 않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묵묵히 밀고나가는 과정의 아름다움. 숲을 만들 정도의 큰일도, 집의 화분을 죽지 않게 가꾸는 작은 일도, 사실은 지켜야하는 원칙과 세심함이 전부다. 우리가 배운 원칙을 무시할 때는 그것보다 나은 결과를 바래서이지만 결과도 원칙도 무너지는 비극도 종종 있다.

 

김하동 씨는 처음 배운 바른 방법대로 농사를 짓는다. 배웠으므로 배운 대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사람을 만나면 평온한 마음이 든다. 무언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 작은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함께 볼 영화 / 감독 프레데릭 백, 원작 장 지오노, 나무를 심는 사람

 

[크기변환]김하동.jpg

 

 

어쩌면 농사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몰라요

 

제가 여기 내려온 것은 1999년, 삽십대 후반이었어요. 첫애 낳고 나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막연히 자연이 있는 곳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즈음에 신문에서 조그맣게 귀농운동본부가 만들어진다는 광고를 읽고 한참 후 어느 여름에 드디어 상주의 모동면에서 4박 5일 정도 진행되는 귀농 교육을 받았어요. 아내와 아이, 조카들까지 모두 함께 놀러가는 기분 비슷하게 갔죠. 짧은 시간이라 기술 교육보다는 농사란 어떤 것이고, 유기농은 무엇이고, 이런 농사에 대한 가치와 관련된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였어요.

 

그 때 구체적으로 귀농하고 싶은 생각이 굉장히 강해졌지만 그리고 나서도 한 삼년 정도는 못 내려왔어요. 애들도 태어났는데 전혀 경험도 없는 사람이 농촌에 내려와서 내가 먹고살 수 있을 것인지 불안했거든요. 쉽게 정리를 못하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 조사만 해보며 삼년 흘렀어요. 그러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민한다고 무언가 진전되는 게 아니구나, 그건 어느 순간 결단을 내려야하는 문제지, 준비가 되고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이러다가 도시에 주저앉게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원래 직장은 노동문제 상담소였어요. 대학생 때부터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법률적인 부분으로 상담해주고 교육하는 일들을 했어요.  체불 임금, 다친 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하는 일들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니 어쩐지 계속 돈과 관련된 일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젊은 시절부터 가져온 나의 가치관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5년 정도 지나니까 평생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인가에는 의문이 들었죠. 그렇지만 귀농하면 전혀 해보지도 않은 일, 자신감도 없는 일로 생활을 유지해야 하잖아요. 불투명함이 너무 많은데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 보면 사람마다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농사가 인간의 본능적인 부분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직장에 사표를 던져 버렸어요. 이걸 던져야 새로운 걸 찾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냥 해버린 거죠.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농부의 성장담

 

사표를 내고 귀농할 곳을 알아보러 6개월 정도 전국 일주를 하다시피 다녔어요. 저는 돈이 많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오래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고 당장 일을 해야 했지요. 처음에는 홍천으로 귀농이 결정이 되었지만 여차저차 잘 안됐어요. 다시 고민에 빠졌죠. 그 때 홍천에 놀러온 젊은 총각 목수를 우연히 만났어요. 자기는 상주에 있는데 거기가 되게 좋다고 해서 그 친구를 따라 부랴부랴 내려왔어요. 사실 그 친구도 금방 귀농한 친구라 산 속에 하우스 하나 지어놓고 포도농사만 조금 짓고 있었어요. 산 속에 조그만 개울도 있고 괜찮더라고요. 농민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공공근로를 하면서 그곳에서 한 달 정도 살았어요. 그 때는 8월, 여름의 끝자락이어서 춥지는 않았는데 한 달 지나니 추워서 도저히 못 살겠더라고요. 집을 구하려고 컴퓨터를 가르치면서 돌아다니다 그제야 제가 오래 전에 처음 귀농교육 받았던 곳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똑같은 곳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귀농 캠프에서 저를 가르쳐주셨던 지역의 선생님을 찾아뵈었어요. 저희에게 막 겁주시면서 단단히 마음먹고 와야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던 분이었어요. 제가 지금 살 데가 없다고 상의하니 그 분들이 집 얻는 것을 도와주셨고 드디어 가족들이 내려왔죠.

지금까지도 ‘아, 이 일은 아닌 것 같아.’ 라던가, ‘다른 일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퇴로를 끊고 나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검소한 생활도 크게 불만족스럽지 않았어요. 만일 농사지으며 빚을 지거나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면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기 때문에 회의감 없이 이어질 수 있었던 거죠.

 

유기농 농사의 시작

 

저는 농사도 모르면서 첫해부터 귀농학교에서 받은 교육에 따라 무식하게 무농약 농사를 시작했어요. ‘너 그러다 굶어죽어. 그건 안 돼. 농약은 안 쓰더라도 비료라도 해야 해,’ 그런 이야기 들으면서 첫해 농사를 망하다시피 했어요. 그런 이야기 들어도 ‘안 쓰는 게 맞다며’ 하고 계속 그렇게 했어요. 농약을 치려고 해도 어지럼증이 생기더라고요. 몸을 쉬었다가 시작해도 똑같아서 이건 농약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다 보니 유기농업을 먼저 시작한 셈이 되었고 쭉 그렇게 살았죠. 첫해부터는 판매할 것에 대한 걱정이 무척 앞섰어요. 포도를 솎아줘야 한다고 해서 만지니까 알이 후루루룩 다 떨어지고, 그나마 달려있는 것도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모르겠고. 결국은 도시에 지인들, 친한 친구들에게 부탁했어요. 도시에서 사회 운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 그래서 제 삶이 어떤지 알고 신뢰해주는 친구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죠.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보기에 좋은 포도는 많이 생산되지 않아요. 잎이 일찍 지면 잘 안 익고 물렁물렁 쉽게 곯아요. 엉성한 거는 보내기 어려워서 생과일로 팔 수 있는 포도는 2,30프로예요. 그래서 생과일 판매하는 게 굉장히 고통이에요.

 

한 번은 아내의 언니가 일하는 서울의 보험회사 빌딩에서 서른 박스를 주문했어요. 빌딩 로비로 30박스를 여러 번 옮겼는데 그 안이 우리 포도 향기로 꽈아악 찬 거예요. ‘헉. 우리 포도에서 이런 향기가! 너무 훌륭한 포도 향기야! (웃음)’ 그 때 좋은 품질의 과일이 생산된 것에 자부심을 느꼈어요. 보기에는 안 좋을지 몰라도 저희는 농약이 없는 포도고,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 여기 상주 포도를 맛 볼 기회가 많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첫해는 의무감으로 사주었던 사람도 다시 찾고 다른 사람 소개시켜주며 순조롭게 잘 팔린 편이에요. 처음에는 조그맣게 농사짓다가 조금 늘리고 또 조금 늘리고, 그러다 한살림 생산자로 물건을 보내는 것까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어요. 상주는 과일 품질이 좋은 지역이어서 제 노력이라기보다는 시기와 환경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빚지지 않고 큰 걱정 없이 살아왔어요.

 

농사는 때를 놓치면 하루 할 일을 열흘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경험이 쌓여 그걸 알 때까지는 여유가 없어 풍경을 못 봐요. 그런데 5년이 지나 여유가 생기니까 봄에 단풍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단풍하면 가을에 울긋불긋한 것만 떠올리잖아요. 겨울에는 황량하게 마른 나뭇가지만 있다가 새순이 나오기 시작하면 연녹색이었다가 짙은 녹색으로 가요. 어느 순간 그게 탁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게 가을 단풍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봄에 단풍이 이렇게 아름답게 피는구나. 내가 이게 보이네. 농부가 조금 됐나? 했던 기억이 있어요.

 

[크기변환]김하동포도밭.jpg

 

 

아이가 변하는 학교

 

애들을 시골에서 키우면 뭐가 좋을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도 크게 불편해하지는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밭에 같이 가서 작업장이나 비닐하우스에 눕혀놓고 자다가 깨다가, 걷기 시작해서는 밭두렁 논두렁 넘어지고, 엎어지고 이러면서 컸죠. 종일 거의 야외에서 지내다시피 해야 되는 거예요. 더운 때는 모기 물리고 땡볕 뜨거운 하우스에서 자고. 그런 것들이 안됐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도 아이들이 여기서 자란 게 불편했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도시에 있으면 다들 학원 다니고 이랬겠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이 학교 땡 하면 바로 집에 왔어요. 학원을 가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버스타고 다닐 수도 없고 우리도 아이들이 공부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었거든요. 본인들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니까 좋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는 둘 다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기숙학교이니 고등학교 이후로는 같이 산다고 말할 수 없죠. 풀무학교는 55년 된 농업학교인데 대안학교로 시작해서 지금은 정부 인가를 받았어요. 저희는 운 좋게 둘 다 보냈는데 들어가기가 쉽지 않거든요. 첫 아이가 그 학교에서 자라는 걸 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학교라고 생각했어요. 그 학교는 3월 달에 입학해서 5월 달에 아이들이 준비한 어버이날 행사를 하고 같이 집에 돌아와 며칠 쉬거든요. 학교 다니기 전에는 농사 도와주는 것을 짜증내고 싫어했는데 학교 다닌지 3개월만에 ‘아버님, 제가 도와드릴 일 뭐 없나요?’ 그렇게 변했어요. 오랜만에 봐서 그런 것도 조금은 있겠지만 태도가 달라진 거예요. 짧은 기간 동안 아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는 학교라면 아이들을 정말 잘 키우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째가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하고 점잖았는데 고등학교 가면서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봤어요. 춤추면서 노래 부르고 뛰고, 놀고, 자기 안에 숨겨져 있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분출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둘째도 중3이 되니까 나도 가볼까? 하더라고요. 입시 경쟁교육에서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학교예요.

 

[크기변환]상주생각1.jpg

 

 

함께 잘사는 상주 로컬 푸드 협동조합, <상주 생각>

 

작년 7월에 농민들이 모여서 <상주 로컬 푸드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농부도 누가 먹는지 알고 보내고, 먹는 사람도 누가 보냈는지 알고 먹는, 그렇게 농산물이 거래되는 새로운 시장을 관계시장이라고 표현해요. 직거래 비슷하지만 서로의 처지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먹거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로컬 푸드 운동이죠. 그런 협동조합을 농민들 스스로 만들고 우리 힘으로 어렵게 돈을 모아 9월에 직매장을 열었어요. 우리의 목표는 소농들도 내 물건을 팔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농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에요. 대농의 시장과 소농의 시장은 달라서 농촌에서도 빈부격차가 커지고 소농은 대처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삶에 의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게 답이겠다, 싶었어요. 사실은 여기서 마을에 한살림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마을 바깥으로 나가서 본격적인 사회 활동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 일은 상주 전체를 아우르는 일이고 좋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에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죠.

 

시내에 있는 <상주 생각> 이라는 가게예요. 기회가 되면 그곳에 있는 상주의 좋은 농산물을 많이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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