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마을이 살아야 상주가 산다 - 상주 마을공동체 집중탐구]

첫 번째 마을 : 낙동면 신상리 – 꽃피는 신상마을

by 상주소리 posted Jul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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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리에 위치한 해바라기밭에서 포즈를 취한 관람객들@낙동신상교회 제공



연중기획 : 마을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 상주 마을공동체 집중탐구

 

첫 번째 마을 : 낙동면 신상리 – 꽃피는 신상마을


 

“우리 마을에서 목회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교인들이 물었다.

“저는 그저 여러분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아요


SNS에 올라온 낙조가 너무나 아름다운 해바라기밭이 상주 인근 사진작가들의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양산까지 준비한 연인들이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때 밭둑 위로 전동퀵보드를 타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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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밭을 찾은 관람객에게 마을 설명을 하는 김 목사@상주의소리




“날도 뜨거운데 사진 찍으러 오셨어요?”

“해바라기와 배경이 너무 예뻐서요. 밭 주인이세요? 밭에 좀 들어가도 될까요?”

“네 마음껏 들어가서 사진 찍으세요. 저는 이 마을 목사입니다.”

“네? 목사님요?”

 

주인공은 바로 낙동신상교회 김정하(48) 목사. 사진촬영을 하던 다른 관람객에게 해바라기 밭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해주고나서 마을에 작은 카페가 있으니 커피 한잔 하고 가라며 권한다.



열정적인 목회자가 교인을 늘리기 위해서 열심히 전도활동을 하는가보다하며 선입견을 가졌었는데, 김 목사의 설명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자가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목사는 5년 전 낙동신상교회로 부임하였다. 부임 할 당시 교회의 상황과 마을의 상황은 무척 어려웠다. 교회는 내부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노령의 노인들이 한 해에 4분이 돌아가시고 건강상의 문제로 이사를 해 인구가 급속히 줄면서 마을도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에서도 목회활동을 했었지만 성격상 목회보다 공동체활동, 사람사귀기를 더 좋아했다는 김 목사는 오히려 시골에서의 작은 교회 목회생활이 더 체질에 맞다고 한다. 때로는 목회활동보다 마을만들기에 더 열중해서 가끔 싫지 않은 핀잔을 듣기도 한다.

 

주민들의 신뢰를 조금씩 얻어가던 중에 마을 주민들이 먼저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김 목사에게 마을만들기 운동을 제안했다. 위기감은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에 끼는 김 목사가 총대를 메 준다면 마을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겠다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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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신상교회 김정하 목사 @상주의소리


일회성 행사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지만 김 목사는 가톨릭농민회를 보면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단순히 성도를 늘리기 위한 전도를 하는 것보다는 주민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자연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소통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 부임 초 김 목사가 교인들에게 강조한 것은 “절대 전도하지 말라”였다.

30년간 전도했는데, 교인이 되지 않았다면 그건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동네일에 열심히 동참하고 봉사하면서 믿음의 모습을 보이면 전도는 저절로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목사의 목회생활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아름다운 잔칫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반교회에서는 총동원 전도주일이라는 행사인데, 새로운 교인을 전도하고 유도하는 행사였지만 어감도 안 좋고, 너무 딱딱하다는 생각에 이름을 ‘잔치’로 바꾸고, 그 날은 목사 가운이나 장로 가운도 입지 않고, 예배도 새로 오신 분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너무 형식에 얽매이지 않게 하려고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런 노력의 결실로 100여 가구 남짓한 마을에서 매 주 40~50여명 정도의 성도들이 예배를 볼 만큼 목회활동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사실 김 목사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성도가 늘어나는 것이 마을 활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런 논리는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대목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돈 보다 고객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었을 때 돈은 저절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고, 가르치는 교사라면 지식보다 학생과의 관계에 더 신경을 썼을 때 학생들의 학력도 더 높아질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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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회째를 맞는 신상마을 음악회에는 지역주민들이 공연과 관람의 주인공이다.@낙동신상교회 제공


그렇게 시작된 김 목사의 일탈(?)은 점점 마을사업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신상마을 작은음악회는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행사였다. 2015년에 경서노회 국내선교부에서 마을잔치 비용으로 10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단순히 음식장만하는데 쓰는 것보다 마을에서 작은 음악회를 하는게 어떨까하는 의견이 나와서 계획을 했고, 기왕이면 진부한 트로트 가수말고, 지역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말 그대로 작은 음악회를 하는게 좋을 듯하여 지역에서 공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매년 300여명 이상이 모이는 음악회는 낙동에서 하는 행사 중 가장 큰 행사에 속하고, 지역언론에도 많이 보도되기도 했다.

 

마을이 살아야 교회도 산다. - 예장 귀농귀촌상담소

 

2016년 마을과 교회에 위기가 찾아왔다. 한 해에 동네어르신이 네 분이나 돌아가신 것이다. 마을로서나 교회로서나 인구의 감소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다. 먼저 해결책을 제안한 것은 마을이장이었다. 심지어 마을살리기를 제안한 이장은 불교신자였다.

“5년만 지나도 마을에 주민들이 확 줄어들텐데 대책이 없습니다. 목사님! 무슨 좋은 대책이라도 없습니까?”

그렇게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귀농귀촌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6년 11월 예장귀농귀촌상담소 상주낙동지소를 개소하였고, 교회 입구에 카페를 겸한 상담소를 만들고, 귀농귀촌인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임시거처인 ‘귀농인의 집’도 3채나 지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로부터 마을에는 10여 세대가 귀농귀촌을 하게 되었고, 새로 신축된 집만해도 9채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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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1리 마을초입에 위치한 마을공작소@상주의소리


특히 주목할 점은 젊은 귀촌인들도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젊은 귀촌인들(농사를 짓지 않는)과의 관계 속에서 좀 더 활기찬 마을만들기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에서 목수경험과 자동제어관련 일을 한 경험이 있다는 한효진씨에게는 마을 초입에 방치된 빈집을 제공해서 목공과 기계 만들기를 하는 마을공작소를 운영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연세가 많아서 평생 운영하던 국수집을 닫으려는 할머니를 설득하여 할머니의 손자 내외에게 국수집을 이어 받을 수 있게 만들기도 하는 등 자연스럽게 지역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내재된 가치들을 마을자원으로 활용해 나가고 있다.

 

입소문을 탄 해바라기밭도 그냥 무작정 심은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마을의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오래 자주 체류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획한 것이다. 해바라기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밭을 이용해서 유채,밀, 청보리 등 계절을 달리하는 작물을 심어서 시기에 따라서 다른 작물들이 자랄 수 있게 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해바라기 씨앗은 작은 포장지에 담아서 마을 홍보용 선물로 1000원에 판매하기도 한다. 올 겨울에는 1500평 정도의 해바라기(원래는 논이다.)밭에 물을 대고 얼음썰매장을 운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타고 왔던 전동퀵보드도 그냥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여러 대를 구비해서 마을전체가 해바라기 밭이 되면 그 전동퀵보드를 타고 마을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그런 모든 노력 속에는 개인의 욕심이나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말 그대로 주민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진정성이 보이기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는 교회의 힘으로 이 정도까지 왔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우려도 나타냈다. 일정한 수준이 넘어서면 시골 작은교회의 힘만으로는 재력이나 인력의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다. 이런저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공모사업을 신청해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마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한계를 어느 정도는 느낀다고도 한다. 단순히 영수증 붙여서 보고하는 예산지원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그 진정성을 보고 사람에게 투자 할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비단 신상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상주시의 많은 마을공동체들이 다양한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마을단위에서 해결 할 수 있는 부분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지역에서 함께 의논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리라 본다.

 

박성배 기자 sangjusori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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